2016년 11월 13일 일요일

물리학과 지원동기

제가 물리학과를 지원한 이유는 저의 꿈인 민간 항공기 조종사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항공기 조종사는 항공기의 비행 원리에 관해 가장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항공기의 비행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물리라는 학문을 탐구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일찍부터 물리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물리가 나머지 3가지 과학 과목 중에 가장 실생활에서 찾아보기 쉽다는 이유로 끌렸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물리를 더 공부하고 나면서 그러한 느낌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물리에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민간 항공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서는 항공운항학과를 진학해야 합니다. 하지만 조종사가 되는 방법은 많습니다. 꼭 항공운항학과를 진학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항공운항학과에서도 항공기의 비행원리는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물리의 여러 항목 중 유체 역학과 양력에 관련된 부분만 배우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부분을 중심으로 다른 항목들도 심층적으로 배우고 싶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저는 물리학과를 바라봐 왔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1.물리학이란 무엇인가?
 
물리학은 자연을 공부하는 과학 중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학문이라고 여겨진다. 원자나 분자 덩어리, 응집물질의 물리적 성질 뿐 아니라 그들을 이루는 근본적인 구성 요소와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다룬다. 빛과 물질의 행동과 가능한 한 많은 종류의 현상에 대해 통일된 설명을 하려고 노력해 왔다. 어떤 면으로는 응용에서 화학의 고전적인 분야에 가깝고, 또 다르게는 천문학자들이 전통적으로 연구하여 온 현상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미시 생물학에 가깝게 다가가는 경향을 보인다.
 
화학과 천문학은 분명히 독립적인 과학이지만 둘 다 각자의 문제나 개념, 수단을 다룰 때 물리학을 그 기초로 사용한다. 물리학과 화학을 구분한다는 것이 어려운 분야도 가끔 있다. 노벨상의 역사에서도 몇 번이나 일어났던 일이다. 노벨 화학상으로 받은 몇 가지의 일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의 일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천문학의 경우는 자체적인 노벨상이 없기 때문에 상황이 좀 다르다. 처음부터 천문학에서의 발견은 노벨 물리학상 후보로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2. 고전물리학에서 양자물리학까지
 
 
1901, 첫 번째 노벨상이 주어졌을 때, 고전 물리학은 19세기의 위대한 물리학자와 화학자들에 의해 다져진 굳건한 기초 위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해밀톤(Hamilton)1830년대 초반에 벌써 강체의 운동을 가장 일반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수식을 만들었고, 19세기 후반에는 카르노(Carnot)와 주울(Joule), 켈빈(Kelvin), 깁스(Gibbs)가 완성도 높은 열역학을 발전시켰다. 유명한 맥스웰(Maxwell) 방정식은 전자기 현상을 일반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빛과 더불어 헤르쯔(Hertz)에 의해 발견된 라디오 파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파동현상을 포함하여 다양한 거시현상으로 나타나는 모든 것이 물질 구성입자의 역학적 운동이라는 그림에 잘 들어맞는 것처럼 보였다. 19세기 후반의 과학자들 중에는 물리학자가 할 일이라고는 잘 정립된 지식의 몸체에 조그만 구멍을 메우는 일 뿐이라는 견해를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 정도의 물리학에 대한 만족이 잘못된 전제 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세기의 전환점에서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현상을 발견되었고 물리학의 이론적 기초에 근본적으로 새로운 생각들이 공식화되었다.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 자신도 예측하지 못했겠지만, 물리학에 새로운 영역이 열리는 데 굉장한 기여를 한 업적들이 쏟아지던 때를 같이 하여 노벨상 위원회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역사적 기연임이 분명하다.
19세기의 마지막 몇 년 동안에 찾아낸 예상치 못한 현상들 중의 하나가 바로 엑스-(X-ray)이다. 빌헬름 콘롸드 뢴트겐(Wilhelm Conrad Röntgen)1895년에 발견한 것으로 1901년 첫 번째 노벨 물리학상이 주어졌다. 엑스선의 원천이 그 당시에 즉시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때까지 밀봉된 물리적 현상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물론 의학적 진단에 유용하다는 것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세기말에 발견된 또 하나의 특별한 현상은 1896년 앙뚜안느 앙리 벡퀘헬(Antoine Henri Becquerel)이 발견한 방사능(radioactivity)이다.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 부부가 방사성 물질의 성질을 연구하였다. 이 세 사람은 1903년에 노벨상을 함께 받았다. 이들의 업적을 1908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어네스트 러드포드(Ernest Rutherford)의 업적과 함께 짝을 맞추어보면 원자를 이해할 수 있다. 이전에 원자는 구조가 없는 물체로 여겨졌는데, 이들의 일로 원자가 매우 작지만 꽉 찬 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몇 가지 원자핵이 불안정하여 알파(α), 베타(β), 감마(γ)선 같은 빛을 방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는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혁신적인 통찰력이었다. 궁극적으로 동시에 이루어진 물리학의 다른 분야에서의 업적과 합해져서 원자의 구조에 대한 유용한 그림을 처음으로 얻어내게 된다.
 
 
1897년에 조셉슨 제이. 탐슨(Josephson J. Thomson)은 부분적으로 진공이 뽑힌 방전관의 양전극에서 흘러나오는 방사선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 광선은 전기 전하를 운반하는 것으로 확인된 것이었다. 탐슨은 광선이 낱낱의 입자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였고, 나중에 그것은 전자라고 불리게 된다. 탐슨은 전자의 질량과 전하의 비율을 측정하였고 양전하를 띠는 원자핵과 함께 원자를 이루는 구성입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원자핵과 전자의 조합에 따라 원자의 종류가 달라지게 된다. 이것으로 1906년에 탐슨은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그 무렵인 1905년에 이미 필립 이. 에이. 폰 레나르드(Philipp E. A. Lenard)는 양전극 광선이 얇은 금속막을 뚫고 지나가며 형광을 띨 수 있다는 다른 재미있는 성질을 밝혀내어 인정받고 있었다. 곧이어 1912년에 로버트 에이. 밀리칸(Robert A. Millikan)은 기름방울(oil-drop) 실험으로 전자의 전하량을 처음으로 정밀하게 측정하였고 1923년에 광전효과를 발견한 업적과 함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게 된다.
 
수십 년 간 사용하여 온 맥스웰 방정식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이 몇 가지 남아 있었는데 빛을 포함한 전자파들이 전파해 나가는 매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빛 방출을 초래하는 전하 운반자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알버트 에이. 마이켈슨(Albert a. Michelson)은 빛 파장의 수로 물체간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간섭장치를 만들었다. 간섭장치를 이용하면 이전의 어떤 것보다 길이를 훨씬 더 정확하게 비교할 수 있다. 후에 간섭계를 이용하여 파리 측정 측량 국제 연구소(Bureau International de Poids et Mesures, Paris: BINP)는 미터 단위를 미터 원형을 사용하는 대신 특정한 빛의 파장의 수로 정의하였다. 마이켈슨은 간섭장치를 써서 이. 더블유. 몰리(E. W. Morley)와 함께 빛의 속도가 광원과 관찰자의 상대적인 위치와 상관없다는 것을 밝혀내는 유명한 실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빛의 전파에 관여하는 매체가 에테르(ether)라는 이전의 가정을 반박하는 것이다. 이로써 마이켈슨은 1907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전기전하를 운반하는 입자에 의해 빛이 방출되는 미캐니즘은 헨드릭 에이. 로렌츠(Hendrik A. Lorentz)에 의해 연구되었다. 로렌츠는 맥스웰 방정식을 물질 속의 전기전하에 처음으로 적용하였다. 그의 이론은 원자의 떨림에 의해 방출된 빛을 이해하는 데도 적용되었고 이것은 그의 이론을 시험하는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빛에 대한 전기마당과 자기 마당의 영향을 연구하던 피에테르 지만(Pieter Zeeman)은 그보다 더 일찍 1896년에 불꽃 속의 나트륨에서 나온 빛띠가 자기마당 안에서 여러 가지 성분으로 나누어지는 중요한 발견을 하였다. 이 현상은 로렌츠의 이론에 의해 아주 자세하게 해석되었으며 이 일로 두 사람은 1906년의 탐슨보다 훨씬 빠른 1902년에 물리학상을 받았다. 후에 요하네스 스타르크(Johannes Stark)가 원자나 분자로 이루어진 음극선을 이용하여 원자에서 나오는 빛을 강력한 자기마당에 노출시킴으로써 방출되는 빛에 대한 전기장의 직접적인 영향을 보여주었고 방출자의 속도에 따라 변하는 도플러 이동(Doppler shift) 뿐 아니라 빛띠의 복잡한 분리도 관찰하였다. 스타르크는 191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고대에는 개념적 존재로만, 그리고 고전물리학에서는 구조가 없는 물체로 취급되던 원자에 대한 구체적인 모델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19세기 중반부터 다른 종류의 원자들에 의해 가시영역에서 특징적인 빛띠 선을 방출하는 수많은 실험물질들이 이미 존재해왔다. 여기에 찰스 쥐. 바클라(Charles G. Barkla)가 발견한 특성 엑스선 방사가 더해지게 되었다. 이것은 원자의 내부 구조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는 데 중요한 출처가 되었다. 이 일로 바클라는 1917년 물리학상을 받았는데 이것은 막스 폰 라우에(Max von Laue)가 엑스선의 파동성과 굴절 특성을 밝히고 1914년에 노벨상을 받은 뒤였다.
 
바클라의 특성 엑스선은 엑스선 관에서 나오는 방사선에 노출된 원소의 특유한 이차 광선으로, 시험물질의 화학적 구성과는 무관하다. 카를 마네 쥐. 지그반(Karl Manne G. Siegbahn)은 모든 원소의 특성 엑스선 빛띠를 측정하면 가벼운 원소에서 더 무거운 원소로 갈 때 연속적인 전자껍질이 어떻게 더해지는 지를 체계적으로 보여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실험을 위해 고도로 정교한 분광기를 디자인하여 서로 다른 전자껍질 사이의 에너지 차이와 그들 사이의 방사 전이에 대한 법칙을 정립하였다. 그는 1924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원자구조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상식적인 고전물리학 개념에서 아주 멀리 떠나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고전물리학은 에너지를 얻거나 잃을 때 뿐 만 아니라 운동에서도 연속성을 가정한다. 그렇다면 왜, 원자들은 분명한 파장을 가진 빛을 내보내는 것일까? 여기 두 개의 평행한 발전이 해석에 중요한 단서를 주게 된다. 빌헬름 빈(Wilhelm Wien)은 뜨거운 고체에서 나오는 흑체복사에 대한 연구를 했다. 이 복사는 가스 상태의 원자에서 나오는 방사선과는 달리 연속적인 주파수 분포를 가진다. 고전 전자기를 이용해서 복사의 주파수 분포와 흑체의 온도가 변할 때 최고세기 주파수의 변이를 유도했다. 이것은 예를 들어 태양의 온도를 알아낼 때 유용하게 쓰이며 빈의 변이 법칙이라고 한다. 이것으로 빈은 1911년에 물리학상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빈은 파장이 아주 짧거나 아주 긴 영역의 분포함수는 제대로 얻지 못했다. 이 문제는 막스 케이. . . 플랑크(Max K. E. L. Planck)가 방사선의 에너지는 양자단위(플랑크 상수 곱하기 각 양자의 주파수)로만 방출되게 된다는 급진적인 생각을 제안을 할 때까지 풀리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것은 어떤 정확한 값을 가지는 비율이 낮은 파장 쪽이 높은 쪽보다 더 높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양자역학의 탄생이 된다. 플랑크는 빈이 노벨상을 받은 몇 년 후인 1918에 상을 받게 된다. 빛이 에너지 양자 단위로 나온다는 것은 알버트 아인쉬타인(Albert Einstein)1887년 헤르쯔(Hertz)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던 광전 효과(photoelectric effect)가 플랑크의 이론의 확장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함으로써 증명되었다. 아인쉬타인은 이론적 물리학에 대한 공헌으로 1921년에 노벨상을 받는다.
 
나중에 제임스 프랑크(James Franck)와 구스타프 엘. 헤르쯔(Gustav L. Hertz)가 역광전효과(inverse photoelectric effect: 전자가 원자를 때려 원자로부터 특별한 에너지의 빛 양자를 만들어내려면 특정 최소 에너지를 가져야 한다.)를 실험적으로 구현했고, 플랑크 상수 를 포함한 플랑크의 식이 일반적으로 유효함을 보였다. 프랑크와 헤르쯔는 1925년에 공동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아서 에이치. 콤프톤(Arther H. Compton)은 엑스선이 물질 입자와 산란할 때 잃는 에너지를 연구하였고 엑스선의 에너지가 일반 빛의 에너지보다 만(10000)배 정도 더 크지만 엑스선 양자도 같은 양자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일은 콤프톤에게 1927년 노벨상을 가져다 주었다. 공동 수상자인 찰스 티. . 윌슨(Charles T. R. Wilson)은 콤프톤의 예측을 증명할 수 있는 높은 에너지 산란을 관측할 수 있는 장치를 고안했다.
에너지 양자화의 개념을 바탕으로 미시물리학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단계를 넘겨 모험을 하게 되었다. 닐 에이치. . 보어는 그보다 앞선 다른 유명한 물리학자들과 같이 원자를 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돌고 있는 행성체계와 같이 이해했다. 원자에서 나오는 뚜렷한 빛띠 선들은 특정 양자화된 각운동량을 가진 고정 궤도를 돌던 전자들이 다른 양자화된 에너지 상태로 가면서 두 상태의 에너지 차이가 ℎν 가 되도록 주파수 ν를 가진 방사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보어의 제안은 플랑크의 가설보다는 여전히 고전물리학에서 다소 급진적으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보어의 방식이 비록 광학 빛띠들의 가장 간단한 현상의 몇 가지만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올바른 시작점으로 받아들여졌다. 보아는 1922년에 물리학상을 받았다.
 
방사선이나 물질의 성질에 대한 좀 더 깊은 토론은 미시세계에 대한 이론적 설명이 더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1923년에 루이-빅토르 피. . 드 브로이 왕자는 물질입자가 파동성을 보인다는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전자기 방사선은 빛알갱이의 형식으로 물질성을 보여준다. 드 브로이는 이러한 양면성에 대한 수학적 공식을 개발했고 그것은 움직이는 입자의 드 브로이 파장이라 불린다.클린튼 제이. 데이비슨에 의한 초창기 실험에서 파동이 결정을 때릴 때 반사되는 것과 비슷한 반사효과를 전자가 보인다는 것을 나타냈고 비슷한 실험이 반복되어 드 브로이가 예측한 파장을 증명하기에 이른다. 조금 나중에 조지 피. 탐슨(제이. 제이. 탐슨)은 얇은 금속막을 뚫고 나가는 높은 에너지를 가진 전자 실험을 훨씬 개선하여 아주 분명한 회절현상을 보았다. 드 브로이는 1929년에, 그리고 데이비슨과 탐슨은 1937년에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제 남은 것은 원자수준의 현상과 그와 관련된 방사선에 유효한 고전역학을 대신하는, 새로운 모순 없는 이론을 만드는 것이었다. 1924년에서 26년까지의 시간은 이 분야가 격렬하게 발전한 기간이었다. 어윈 슈뢰딩거는 드 브로이에서 좀 더 나아간 생각을 만들었고 1926년 초반에 고유값 문제로서의 양자화에 대한 기초논문을 작성하였다. 슈뢰딩거는 파동역학이라 불리는 것을 창조한 것이다. 그보다 한 해 전에, 베르너 케이. 하이젠베르크가 이미 매트릭스 역학이라 불리는 다른 방식의 수학을 이용한 방정식을 이미 시작했었고, 이것은 나중에 슈뢰딩거에 의해 같은 결과를 준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슈뢰딩거나 하이젠베르크의 새로운 양자역학은 원자적 물체에 대한 궤도라는 고전적인 직관에 기초해 출발한 것이었고 동시에 측정하는 어떤 물리량의 정확도에 대한 한계가 자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관계이다.
 
하이젠베르크는 1932년에 양자역학을 발전시킨 공로로 물리학상을 받았고, 슈뢰딩거는 1년 후인 1933년에 폴 에이. . 뒤락과 공동 수상을 하게 된다. 슈뢰딩거와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은 원자의 가전자의 궤도 운동과 관련해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와 낮은 에너지에 대해 유효한 것이었고 빠르게 움직이는 입자에 대한 아인쉬타인의 법칙에 의한 요구사항은 만족시키지 못하였다. 뒤락은 아인쉬타인의 특수상대성 효과를 고려하여 수정된 형식을 만들었고 그의 이론이 전자의 고유 스핀에 관련된 항을 포함할 뿐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입자, 즉 같은 질량을 가지지만 반대의 전하를 가지는 반입자의 존재를 예측한다는 것을 보였다. 전자의 스핀으로부터 고유자기모멘트와 원자 빛띠에서 관찰된 미세구조를 설명할 수 있었다. 첫 번째로 관측된 반입자는 1932년에 카를 디. 안데르슨이 본 전자의 반입자로 그 이름을 양전자라 한다. 이 일로 1936년의 물리학상 일부를 차지하게 된다.
 
양자역학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 일들은 노벨상으로 빛났다. 하이젠베르크가 20대 초반일 때 지도교수였던 막스 보른은 수학적 공식을 만들고 의미있는 물리적 해석으로 중요한 기여를 했다. 파동방정식에 대한 통계적 해석에 대한 일로 1954년 물리학상의 반을 받았다. 볼프강 파울리는 보어의 예전 양자이론에 기초하여 각 양자상태는 단 한 개의 전자만 차지할 수 있다는 파울리의 배타원리를 이미 공식화하였고, 이 원리는 나중에 일반적으로 반정수(1/2의 홀수배) 스핀을 가지는 페르미온 입자의 파동 함수의 대칭성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페르미온은 /2π 의 정수배로 스핀을 가지는 입자인 보존과 구별된다. 배타원리는 물리학의 많은 분야에서 깊은 의미를 가지는 결과들을 주었고 파울리는 1945년에 물리학상을 받았다.
 
전자의 스핀에 대한 연구는 계속해서 물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스핀을 가지는 물질의 자기 모멘트를 결정하는 정확한 방법은 원자나 원자핵에 대해 (스테른, 라비, 블로흐, 그리고 부르셀 등에 의해) 1930년대와 40년대에 계속 발전했다. 1947년에는 폴리 카르프 쿠쉬가 전자 하나의 자기 모멘트가 디락이 이론적으로 예측한 값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고 약간의 차이를 갖는다는 것을 말할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다. 동시에 윌리 이. (Willis E. Lamb)은 전자기장과 상호작용을 하는 전자의 스핀에 대한 비슷한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수소에서 방출되는 미세구조(fine structure)를 고성능 라디오파 공명법을 이용해 연구했다. 그 결과 미세구조 분할이 디락의 예측값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그 차이가 상당한 양이라고 밝혔다. 이 결과들은 디락, 하이젠베르크, 파울 리가 시작했던 전자기에 대한 양자이론의 응용에 있어서 그 기초개념부터 다시 고려해야한다는 분위기를 불러일으켰다. 쿠쉬와 램은 1955 년에 각각 물리학상을 반씩 차지했다.
 
양자전기동역학(QED, Quantum ElectroDynamics)에서 전하를 가지는 입자는 양자간섭이론에서처럼 실질적인(virtual) 빛알갱이을 교환하면서 상호작용을 한다. 이전 설명에서는 단 한 개의 빛알갱이 교환만을 포함했지만, -이치로 토모나가와 줄리앙 슈윙거, 리차드 피. 퐈인만은 전자-전자 산란과정에 수개의 빛알갱이 교환이 일어나기 때문에 실제로 훨씬 복잡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있는 그대로의' 점전하(point charge)는 그 자체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 자신의 주변에 입자-반입자 쌍으로 만들어진 실질적인 구름을 만들어 내고 결과적으로 유효 자기 모멘트가 변하고 짧은 거리 안에서는 쿨롱 포텐셜도 변한다. 이러한 설명을 바탕으로 한 계산 결과는 쿠쉬와 램의 실험결과와 놀라울 정도의 정확도를 가지고 일치했고 QED는 현재 존재하는 가장 정확한 이론으로 간주되고 있다. 토모나가와 슈윙거, 퐈인만은 1965년에 노벨상을 나눠 가졌다.
 
QED의 발전은 더 높은 에너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양자장의 상태에서 쌍생성의 개념 (실질적 과정으로서와 입자의 실제적 물질화로서의 과정 둘 다)은 강한 상호작용의 현대적 분야인 양자색역학(QCD, Quntum ChromoDynamics) 이론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양자역학과 양자장 이론의 또다른 기초적 측면은 파동함수와 장의 대칭성이다. 완전히 동일한 입자를 서로 바꿀 때의 대칭성은 파울리의 배타원리에 숨어 있다. 공간변환에 대한 대칭성도 또같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1956년에 쑹-다오 리(Tsung-Dao Lee)와 첸 닝 양(Chen Ning Yang)은 물리적 상호작용이 거울에 대한 반사에 대해서 대칭성을 항상 갖는 것은 나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 왼손 좌표와 오른손 좌표에서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물리적 상호작용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P’로 표시하고 반전성(parity)이라 불리는 파동함수의 성질이 그 같은 상호작용 아래서는 보존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고 거울반사 성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리와 양의 연구는 그러한 효과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의 시작점이 되었고 약한 상호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베타 붕괴(β decay)와 파이뮤 붕괴(π→μ decay)가 반전성 보존을 깬다는 것을 찾아냈다. 리와 양은 1957년에 노벨상을 함께 받았다.
양자역학의 다른 대칭성은 전하 켤레화(‘C’로 표시)라 불리는 입자를 반입자로 바꾸는 것과 관련이 있다. 리와 양이 토론한 상황에 따르면 방사성 변환에서 반전성이 보존되지 않지만 입자와 반입자가 완전히 반대되는 방식으로 반전성을 깬다는 의미에서 대칭성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C”“P”가 결합된 방식으로 대칭성을 보존하는 결과를 주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1964년에 제임스 더믈유. 크로린(James W. Cronin)과 발 엘. 퓌치(Val L. Fitch)“K 메존(meson)”이 비록 작은 범위이지만 이 원칙을 위반하는 붕괴 모드를 갖는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그다지 오래 지속되진 못했다. 크로닌과 퓌치는 이 일로 1980년 노벨상을 받았다. 그들의 결과는 “T”로 대표되는 시간의 역전에 대한 자연현상의 대칭성에 대한 문제를 품고 있으며 “PCT" 대칭성이 항상 유지되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계속 토론되어지고 있고 이론 물리학의 가장 심오한 기초부분을 건드리고 있다.
전자기 마당은 게이지 대칭성이라는 또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전자기 포텐셜에 어떤 양자역학적 위상 인수, 즉 게이지를 곱하더라도 마당 방정식이 같은 형태를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약한상호작용이 이 성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지 않았지만 1960년대 후반에 쉘든 엘. 글라쇼우(Sheldon L. Glashow)와 애브더스 살람(Abdus Salam),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가 함께 한 연구에서 약한 상호작용과 전자기적 상호작용이 같은 기초 위에서 설명된다는 이론을 만들어 내는 길잡이 원리가 되었다. 세 사람은 1979년에 함께 통일된 상호작용에 대한 설명을 한 공로, 특히 약한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중성 전류에 대한 예측을 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고 중성전류는 최근 실험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20세기의 마지막으로 1999년 노벨 물리학상은 게르하르더츠 후프트(Gerhardus't Hooft)와 마르티누스 제이. . 벨트만(Martinus J.G. Veltman)이 공동 수상했다. 그들은 양자역학 계산에서 무한대로 가는 항을 제거하는 데 필요한 전기-약력이론의 재규격화 방식을 보여 주었다. 마치 QED가 쿨롱 상호작용에 대해 비슷한 문제를 푼 것과 같다. 이 연구는 일반적으로 입자들의 상호작용에서 약한 상호작용의 기여를 자세하게 계산할 수 있게 해주며, 게이지 불변의 원칙 위에서 모든 종류의 물리적 기초 상호작용들에 대한 이론적 변용을 증명했다.
 
양자역학에서 양자장 이론으로의 발전은 20세기에 이룬 가장 위대한 업적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고전 물리학에서 현대 양자 물리학으로 가는 개략적 묘사는 자연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종류의 입자와 힘들에 대한 기초적이면서 통일된 설명으로 가는 긴 여정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었고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으며 목표가 앞에서 멀리 있음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전기-약력과 강한 핵력 그리고 중력을 모두 함께 통일시키는 것이 남아 있는 일의 하나이다.
 
그러나 여기서, 미시세계의 양자적 설명이 또 다른 주요 분야라는 것을 언급해야 한다. 때로 유생분자에까지 확장되기도 하는 분자계의 화학적 성질과 응집물질의 구조를 계산하는 분야가 물리학 뿐 만 아니라 화학분야의 노벨상으로 빛나는 분야가 되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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